묵상 중 서두없이 날 것(?)의 글을 올립니다. 감안해주세요.
1.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 갈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발견한 깊은 굴.. 그곳으로 들어갑니다.
동굴 어디쯤까지 들어갔을까요?
동굴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무리를 만납니다.
2.
굴 안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니
행색이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3.
다윗도 그러했겠지만,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을까..?'
'첩자는 아닐까..?'
이렇게 그들은, 낯선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봅니다
4.
따가운 시선을 한몸에 받은 다윗..
그 시선이 덜 미치는 동굴 한켠에 자리를 잡고
가뿐 쉼을 내쉽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요?
누군가 다윗에게 물 한모금과 빵을 내밉니다.
왜인까요?
아마도 다윗의 그런 모습이
처음 동굴 안으로 들어 왔을 때
자신의 모습이어서 일까요?
이때 다윗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5.
저는 우리교회가 이런 교회였으면 합니다.
누구든 올 수 있고
누구든 품을 수 있는 교회
하나님 마음을 닮고, 담은 공동체 말이죠.
다윗은
이미 수백명의 사람들이 동굴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을 때
이방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다윗을 배척하지 않았고 그를 품었기에
다윗은 그곳 아둘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6.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젠 다윗이 그들을 품어냅니다.
그리고 그들의 지도자가 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동굴 안 사람입니까, 아님 다윗입니까?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사연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 핵심은 뭘까요?
누구든 자기 의를 주장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우리는
다윗의 어떤 섬품이나 리더십을 생각하지만
동굴 안 사람들에게 다윗은
낯선 이방인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다윗을 품으면서
다윗은 동굴안 사람들에 의해
또 다시 한번 자라고 성장하게 됩니다.
7.
동역자 여러분, 이 사건을 두고 확신하는 건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낯선 이방인이라는 것과,
누가 먼저 이것을 인정하고 용납하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 공동체는 어떠합니까?
지금 나는 어떠합니까?
여러분의 목자로서 우리 교회는
모두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보입니다.
친한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그리고
아무곳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
아니라고 말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한 논쟁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8.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책망하셨습니다.
무성한 잎은 자랑하였으나 열매가 없는..
저는 교회의 성장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는 밑그릇이
더 중요하다 믿습니다.
그러니 부디 우리 교회 성도들이
낯선 다윗에게
물 한 모금과 빵 한 조각을 먼저 건낼 수 있는
사람들이길 기도합니다.
9.
2025년에는
더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는
그릇들이 되시길 바라고
또 그리되셔야만 합니다.
저는 그렇게
대제사장의 '직'을 수행하겠으니
부디 공간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실천하는 아둘람 굴의
거룩한 제사장들이 되십시오.
"1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명 가량이었더라" _삼상22:1~2
ps.
자리에 연연하기 보다는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세울 수 있다면
부르심이 있는 곳! 어디서든
그 '직'을 다할 것입니다 ^^
오늘도 으랏찻차 새날되세요~!!